상담사 공지
25.11.0611월 8일, 15일은
타로 강의가 잡혀서 접속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급작스런 약속으로 인해
급히 마무리합니다.
안녕하세요. 11월 6일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날이 많이 추워졌죠?
옷은 따숩게 입고 계신가요.
붕어빵은 드셨나요?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실 준비는 되셨나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
제게 힘이 되어주시는 내담자님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안녕" 하신가요?
겨울이 매서우면 그 다음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올 겨울이 유독 춥게 느껴져서,
내년에 풍년을 위한 과정이라 믿고 싶네요.
저도, 우리 내담자님들도요.
서론은 이쯤에서 짧게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시험 관련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물론, 저와 생각이 많이 다른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해요.
종종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결과" vs "과정"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저는
둘 다 가질 수 있는 순간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라는 인간은 "과정"을 선택하는 사람일 뿐이죠.
그래서 한 번 꺾여버린 것에 대해서
다시 그것을 붙잡는 일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많이 두렵고, 아프고 무섭기 때문이죠.
다시 마주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왔습니다.
그래서 오래도 걸렸죠.
이미 세상이 내게 그런 선고를 내린 것만 같으니까요.
"여기까지야."
라고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 말은 존재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
이유를 막론하고
그 결과는 분명 자신이 짊어져야 합니다.
몸살감기가 독감일 때,
일생일대의 시험을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안쓰럽고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오고
남들도 마음은 이해해줍니다.
그럼에도 결과는 평생 자신이 가져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그 순간의 결과가
그 사람의 가치를 정의 내린다고 생각하게 되죠.
"나를 구성하는 점수 중 하나" 라서요.
하지만 진짜 정의 내려지는 순간은
그 점수를 받고 난 뒤,
"나"의 선택이
진짜 가치를 만들고 정의 내리게 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그 가치인 것이고
스스로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더 나아간다면
그 사람의 가치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더욱 더 무수히 마주하게 될 시험들 중,
그 한 번의 시험, 그 한 번의 경험으로
"나"의 가치를 정의 내리게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내담자님들에게 건네는 말이고,
제 자신에게도 되묻는 말입니다.
인간사가 정말 재밌는 이유는,
자신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 하고,
타인들로 하여금 나의 가치를 비교 분석하고
내가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타인들의 기준이 내게 적용되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같은 옷을 입는다고 옷 맵시가 같은 게 아니고,
이 옷이 안 어울린다고 다른 옷이 안 어울리는 게 아니며
억지로 입은 옷은
예상치 못 하는 이벤트를 발생 시키고
그 이벤트는 또 인간에게 변수가 되죠.
그리고 우리는 그 "변수"를 마주했을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알게 됩니다.
이때가 돼야 사실 자신의 진짜 가치를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우리는 선택을 하게 되죠.
"내가 하고 싶은 것" 과 "내가 가진 것" 으로 말이죠.
제가 아는 실제 사례 중,
면접에서 떨어지고,
다음 날 기회가 생겨 "같은 곳"에
다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또 떨어졌죠.
그런데,
다 포기하고 있던 다음 날,
그 곳에서 합격 했다는 연락을 받았던 사례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분이 처음에 떨어졌을 때
포기했고,
노선을 틀었다면 합격한 사람이 아니죠.
이 사람을 바라보면
떨어진 사람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설명을 위해 너무 돌아 왔네요.
결국,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나의 가치는 정해지는 게 아니라,
증명하는 거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과정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됐고,
"여기까지야"라는 말에
"지금은"
이라는 말이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또, 나와 안 맞아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나와 맞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으니까요.
정말 간절하게 바라는 시험이 있다면,
정말 잘 보시기를 간절하게 바라지만
그 간절함에 맞는 과정을 얻으시기를
더욱 바랍니다.
물론, 제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맞는 정답인거죠.
그래서 저는 더욱 제 과정이 중요해집니다.
성공을 하더라도 저는 저로서 있어야 하고
실패를 하더라도 저는 저로서 걸어야 됩니다.
실패 후 성공이 아니라,
성공 후 실패인 사람이라서
제 말의 힘이 부족할 수 있지만
아직 저는 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남들에게 기억될 것은
"결과"겠지만,
저는 한 가지 뼈저리게 배운 것이 있습니다.
제가 타로를 처음 할 때 들었던 말들은
"너는 타로를 하면 안 된다."
였습니다.
그리고 타로로 인정 받았을 때 들었던 말들은
"너는 타로를 했어야 한다."
였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매 순간 심판대에 올라서는 업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훗날, 제가 사랑했던 분들이
저를 다시 마주하는 날이 왔을 때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요.
저는 선택을 했고,
증명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이 곳에서 실패를 겪어도
저는 또 다시 증명을 해나갈 것입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다 보니,
제게 오는 당신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말이
당신 답게 해내시길 바랍니다.
라는 말입니다.
시험 한 번으로 당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길 바라니까요.
항상 당신을 응원합니다.
행복해지기를 빌고 있습니다.
제게 스쳤던 모든 인연이
그래도 평온하고 행복이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때때로 불행은 착한 사람들에게도 온다는 말이 있듯이
감기처럼 다녀갈 고통에
인생을 담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사랑하는 당신의 걸음 걸음은
틀리지 않을 것이라 믿으니까요.
P.S: 전화를 거시기 전에
묻고자 하는 포인트를
한 번 더 생각해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거 없어도 제게 말씀을 해주시면
제가 해드릴 수 있고 알아서 질문을 잡아드릴 수 있지만,
질문을 조율할 시간을 줄일 수 있고,
타로의 말을 전하는데 있어서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S2: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 봐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저와 마주한 당신 이외에는 점술을 사용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속마음은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1:1이라는 조건으로 보는 것이지만
그 이외에 타인의 인생 이야기는 점술을
사용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삶을 누군가 물어도 답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이 다른 사람의 삶을 물어도 답하지 않습니다.
자매품으로 건강도 보지 않습니다.
건강은 병원 시스템 이용을 권장합니다.
P.S3: 저는 촉이나 직감을 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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