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나루 점쟁이 - 내담자 대신 직접 물어본 10가지>
* 모든 답변은 점쟁이 선생님이 직접 답변해 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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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타로는 아버지께서 남긴 유산이라고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
점쟁이 : 저희 집은 ○○ 지역에 있는 법정사라는 절을 지키며 살아온 집안입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철학으로 유명하셨던 분이세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에 연예인이나 정치인들까지 새벽 5시부터 줄을 서서 찾아올 정도로 명성이 높으셨습니다.
제가 공지에 올려둔 책들도 모두 아버지께서 직접 정리해두신 것들인데, 평생 공부하시며 쌓아온 지혜가 그대로 담겨 있는 자료들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훗날 상담 일을 하게 될 걸 미리 아셨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타로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는데도, 언젠가 제가 그 길을 이어가길 바라셨는지 철학 자료들을 꼼꼼하게 정리해 두고 떠나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철학 공부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니?"
하지만 그때 제 나이가 스물네 살이었어요.
그 무게를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워 거절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부산 서면 밀리오레 앞을 지나시다가 천막을 치고 타로를 보는 사람을 우연히 보셨다고 해요.
그 순간 직감적으로 "아, 이거다. 우리 딸이 이걸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합니다.
그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지금 돌아보면 어머니의 선택을 따라간 것이 제 삶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일을 사랑하게 된 이유, 그리고 지금의 제가 있게 된 데에는 부모님의 마음과 응원이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Q. 060 시절부터 상담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전화 타로가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았던 시절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

점쟁이 : 오피스텔에서 예약 상담을 하던 시절이었어요. 어느 날 문득 '타로 샵을 하나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060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전화를 걸었고 간단한 타로 테스트를 받은 뒤 바로 등록하게 되었죠.
그 이후로는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면서 제 존재를 알리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노력 덕분인지 지금은 '점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당시 제 활동명은 예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이 바로 예지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시작이었죠.
「Q. 22년의 세월 동안, 지금도 기억에 남는 상담이 있으신가요? 」
점쟁이 : 이 이야기는 늘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제 상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 조심스럽게 말씀드려요.
제가 스물여덟 살 때 해운대에서 타로 샵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세 분의 어머님이 함께 방문하셨어요.
그중 한 분이 자녀분의 운세를 보셨는데, 당시 저는 아직 어렸고 상담 경험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을 부드럽게 돌려 전하는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보이는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달에 아드님에게서 큰 사고수가 보인다고요.
안타깝게도 그다음 달, 오토바이 사고로 아드님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고, 저 또한 그 충격을 오랫동안 안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함께 계셨던 지인 두 분이 제 상담 이야기를 주변에 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졌고, 그 시기를 계기로 제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는 기쁘거나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큰 책임감과 숙제를 남긴 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Q. 그렇다면 반대로, “이 일을 하길 정말 잘했다”라고 느꼈던 순간도 있으신가요? 」

점쟁이 : 오랜 경력을 가진 만큼 항상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큽니다.
'1세대 예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는 자존심과 명예도 있기 때문에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상담을 마친 후 내담자분들이 전해오시는 후기 덕입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을 만나서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 내가 이 일을 정말 잘 선택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얼굴을 보고 상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전화 상담이라도 서로의 진심이 전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느끼는 감정이 제게는 무엇보다 큰 행복입니다.
「Q.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이나 취향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
점쟁이 : 예전에는 가정이 없다 보니 화가 나면 바로 표현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정을 꾸리고 어린아이도 있다 보니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어요.
성격도 훨씬 유해졌고, 한 번 더 이해하려는 마음의 폭도 넓어진 것 같습니다.
예전의 저와는 확실히 다른, 조금 더 차분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Q. 타로 마스터가 아닌 '나'로서의 선생님의 모습도 궁금합니다. 」
점쟁이 : 제가 이번에 7년 만에 다시 복귀했습니다.
복귀하기 전에는 골프도 즐기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했죠.
그런데 다시 일을 시작하고 보니, 역시 저는 한 번 시작하면 일에 몰입하는 성격이더라고요. 상담은 물론이고 교재 정리까지 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쉬는 날에도 자연스럽게 일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다시 이 길로 제대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있어서 주말에는 일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 시간이 또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하하.
「Q. 요즘 선생님의 고민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
점쟁이 : 저는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걸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의 마음이 제 마음 같지 않다는 걸 자꾸 느끼게 됩니다.
마음을 나누면 고마워하기보다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때 상처를 받을 때도 있어요.
'적당히 해야지'
생각은 하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쉽지가 않습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이런 건 참 잘 고쳐지지 않네요.
그래도 제 성격이고 제 마음이니까, 너무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조절해 보려고 합니다.
「Q. 신이 점쟁이를 만들 때 유난히 많이 넣은 것과 거의 넣지 않은 게 있다면? 」
점쟁이 : 신이 제게 유난히 많이 넣어준 건 없는 거 같아요. 하하.
그래도 제가 하고 있는 이 분야에서는 감각도 좋고 영리하게 잘 해내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 공부머리 같은 건 정말 넣지 않으신 것 같아요.
넣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안 넣어주신 것 같습니다. 하하
「Q. 20대의 점쟁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점쟁이 : 20대의 저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그 시절은 정말 아름답고 찬란했지만, 너무 어렸기에 그 소중함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때의 나에게 스스로를 충분히 아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합니다.
만약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사과를 꼭 전하고 싶어요.
「Q. 점쟁이와 가장 닮은 타로 카드는? 」
점쟁이 : 저는 3번 여황제 카드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도 연결되고, 앞으로도 여황제처럼 풍요롭고 충만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네요.
글로 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해 인터뷰 답변이 다소 미숙할 수도 있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더 진심을 담아, 따뜻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